관련보도

 

글 수 91
 
(0.0/0)
조회 수 : 2367
2010.10.15 (19:41:49)
# 원본글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808290

실체 없는 소동, '한글공정'
할 일 안 한 우리 정부와 기업 잘못일 뿐

  


며칠 전 전자신문에 모바일 기기의 한글 입력 기준을 중국이 정하게 될 것 같다는 기사가 실렸다. 동북공정의 일환아니냐는 분석과 함께였다. 트위터를 비롯한 인터넷 공간이 금세 끓어올랐다.

'동북공정'에서 차용한 '한글공정'이라는 신조어도 금방 탄생했다. 아고라에는 '한글공정'을 비판하는 이슈 청원이 줄을 이었다. 소설가 이외수씨는 한글이 중국 것이라면 만리장성은 우리 것이라고 우겨보자는 트윗을 남기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이내믹 코리아가 또 한 번 시끄러워졌다.

문제의 기사를 찬찬히 살펴봤다. 중국이 조선족이 사용하는 법정 언어인 한글에 대한  모바일기기 한글 입력 방식 자체 표준을 만들고, 이를 국제표준기구에 등록하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취재원은 '중국조선어정보학회'의 한 관계자였다. 이에 대한 한국측 입장의 취재원은 한글정보학회 회장과 기술표준원 정보통신표준과장이었다.

중국조선어정보학회 관계자를 접촉했다. 중국 길림성에 있는 현룡운 회장이었다. 국제 전화를 걸었다. 현 회장은 선선히 모든 사실을 인정했다.

"중국에서도 한글 사용 인구가 210만 명이다. 이들을 위한 표준을 정하는 작업은 꼭 필요하다. 우리가 당장 국제표준을 등록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 표준이 정해지면, 우리의 '표준안'을 한국, 북한, 조선족 학회가 참여하는 국제표준기구 워킹그룹에 제출할 예정이다. 그러나 아직 중국 자체 표준화 작업도 완료가 안 됐기 때문에 국제표준기구 등록까지는 갈 길이 멀다."

현회장은 도대체 왜 동북공정 논란이 불거지는지조차 이해가 안 된다는 태도였다.

한국측 학회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조선어학회는 지금까지도 한글과 관련된 국제 표준을 만들 때 늘 대화해왔던 파트너였던 것이다. 한글정보학회는 '한글공정' 논란을우려한다는 공식 성명까지 발표했다. 한글학회는 향후 국제 표준을 만드는 데 협상 주도권이 중국에게 넘어갈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국제 표준 기구 워킹그룹에서 중국조선어학회 측과 북한, 한국, 세 당사자가 협의를 해야 하는데 중국 측은 통일된 표준안이 있는데 반해 우리는 국내 표준안조차 없으니 저 쪽 의견대로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준비 못한 우리 잘못이지, 중국 잘못이 아니란 얘기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아직까지 모바일 기기에 대한 국내 표준안조차 없을까? 기술표준원 정보통신표준과장은 대기업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국내에 모바일 입력 방식에 대한 특허만 400여 개가 되고, 특히 삼성과 LG 등이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특허('천지인 방식'. '나랏글 방식')로 시장을 사실상 양분하고 있는 상황에서 양보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막대한 이권이 걸려있다고 한다.

1995년부터 표준화 작업을 추진했다면서 아직까지 아무런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정부도 기업 핑계 댈 일만은 아닌 듯 싶었다.

결국 '한글 공정'은 실체 없는 소동이었다. 중국 조선어 학회 측은 한글의 국제 표준을 만드는 데 늘 참가해왔던 파트너였다.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자신들 나름의 표준을 만들어, 협상장(워킹그룹)에 들고나오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 밖에 없다.

문제는 우리 쪽에 있다. 15년 동안 아무런 표준안도 만들지 못한 정부와 기업들 탓에, 우리는 모바일 입력 방식에 대한 '우리 의견'을 제출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 비판의 화살은 중국이 아니라 우리 기업과 정부에게 돌아가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전후관계를 세밀히 전달하지 않고, 중국 조선어학회의 표준화 작업을 '동북공정'과 연결시킨 무책임한 보도는 이 허망한 소란의 원인을 제공한 책임이 있다. 또, 이를 자세히 취재하지 않고, 첫 보도를 별 생각 없이 받아써 논란을 확대한 다른 언론사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흔히 '중학교 3학년'도 이해할 수 있는 보도를 하는 것이 대중 매체의 목표라고 하지만, 중학교 3학년이나 쓸 법한 수준의 기사는 곤란하다.


최종편집 : 2010-10-15 14:47
Tag List
목록 쓰기